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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 박사의 정치경제 까톡] 삼진 아웃된 신자유주의: 핑크 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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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12. 23. 17:59

라틴아메리카 잃어버린 100년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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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 전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 회장
◇엎친 데 덮친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금융위기의 후폭풍

테킬라 위기의 숙취(Tequila Hangover)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라틴아메리카 경제는 다시 한번 위기 상황을 맞는다. 1997년 지구 반대편의 아시아에서 발생한 금융위기가 러시아의 디폴트 사태(1998년)로 이어진 후 다시 라틴아메리카로 전파되었다.

아시아와 러시아 위기의 여파로 라틴아메리카 전체를 위험 지역으로 간주한 외국인 투자자들은 자금을 대거 회수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국 통화 가치가 급락했으며, 이는 인플레이션 상승과 외채 상환 부담 증가로 이어졌다. 통화 방어를 위해 금리를 인상하면서 내수와 기업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다. 특히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던 국가들은 국제 가격 하락으로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브라질: 아시아와 러시아 위기로 투자자들이 위험 자산을 회피하며 브라질에서 대규모 자본 유출이 발생했다. 브라질 헤알화에 대한 매도 압력이 커지면서 외환 시장이 불안해졌다. 중앙은행이 헤알화 방어를 위해 외환 시장에 개입하면서 외환 보유고가 급감했다. 통화 안정화를 위한 금리 인상은 내수 경기 둔화와 기업 부담 증가로 이어졌다. 버티다 못한 브라질 정부가 1999년 초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로 전환하자 헤알화 가치는 약 40% 급락했다. 덕분에 수출 경쟁력은 다소 회복되었다.
- 아르헨티나: 고정환율제를 운영하던 아르헨티나도 브라질과 비슷하게 외국 자본 유출로 환율 방어 부담이 급증했다. 게다가 아르헨티나는 주요 무역 상대국인 브라질의 헤알화 가치 하락으로 자국 제품이 가격 경쟁력을 잃었다. 무역수지만이 아니라 경상수지 전체가 악화되었다. 환율 방어를 위한 고금리 정책으로 재정 적자도 확대되었다. 이후 아르헨티나는 심각한 경기 침체에 빠졌고, 이것이 프롤로그에서 소개한 2001년의 대위기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되었다.

-베네수엘라: 원유 수출에 의존하던 베네수엘라는 러시아 디폴트 사태 이후 국제 원유 가격이 급락하면서 수출 수익이 급감했다. 정부 수입의 큰 부분을 차지하던 원유 수익이 감소하면서 재정적자가 심화되고, 심각한 경기 침체로 이어졌다. 이는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반발해 발생한 1989년의 대규모 폭동(Caracazo) 이후 지속된 사회 불안과 정치 혼란을 더욱 가중시켜, 쿠데타로는 실패했던 우고 차베스가 선거로 집권하는 배경이 되었다.

◇삼진 아웃된 신자유주의

외채위기 이후 라틴아메리카는 IMF의 권고에 따라 흔히 '워싱턴합의(Washington Consensus)'로 불리는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을 추진했다. 민영화, 시장 개방, 공공지출 축소, 규제 완화 등을 핵심으로 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은 초기에는 경제 성장과 물가 안정 효과를 보였지만, 이후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공공서비스 비용이 상승하고 복지지출이 줄어들었다. 노동시장 유연화와 공공 부문 축소로 일자리 안정성도 약화되었다. 특히 빈곤층의 고통이 컸다. 반면 민영화로 부의 집중은 심해졌다.

이런 상태에서 라틴아메리카 경제는 테킬라 위기와 아시아 금융위기 여파를 추가로 겪으면서 완전히 그로기 상태가 되었다. 그 결과 1980년대 이래로 펼쳐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완전히 불신받게 되었다. 야구 용어를 빌리면, 그야말로 삼진(외채위기, 페소 위기, 아시아 위기) 아웃되었다. 사실 금융 위기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높은 연결성 하에서 외국 자본에 의존하는 경제의 취약성을 드러낸 것이지만, 오물은 모두 신자유주의가 덮어썼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를 대신해 다시 좌파 포퓰리즘의 물결이 라틴아메리카에 일었다. 이른바 '핑크 타이드(Pink Tide)'다.

◇핑크 타이드

핑크 타이드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라틴아메리카에서 좌파 성향 정부의 집권이 이어진 현상을 가리킨다. 이 흐름은 우파 중심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발과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요구하는 민중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였다.

물꼬를 튼 것은 1998년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1998~2013년)였다. 차베스가 사망한 후에는 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2013년~)가 계승했다. 마두로는 이후 두 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선거 논란을 빚으면서 지금까지 집권하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2002년 노동자당(PT)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2003~2011년)가 네 번째 도전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어 같은 당의 지우마 호세피(2011~2017년)가 계승했고 재선에 성공했지만 2017년 탄핵으로 물러났다.

아르헨티나에서는 2003년 페론당의 네스토르 키르치네르(2003~2007년)가 집권했고 퇴임 후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2007~2015년)가 키르치네르주의를 이어갔다. 우루과이에서는 타바레 바스케스(2005~2010년, 2015~2020년)와 호세 무히카(2010~2015년)가 정권을 주고받으며 좌파 정부를 이끌었다. 볼리비아에서는 에보 모랄레스(2006~2019년)가, 에콰도르에서는 라파엘 코레아(2007~2017년)가 10년 넘게 집권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핑크 타이드는 때마침 시작된 중국발(發) 원자재 호황(commodity boom)에 힘입어 다양한 빈곤 완화 프로그램과 사회적 재분배 정책을 펼치며 10년 넘게 지속되었다.

이영조 (전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 회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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