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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비틀즈(the Beatles)'의 리더 존 레논(John Lennon, 1940~1980)의 마지막 앨범 '더블 판다지(Double Fantasy)' B면 첫 곡은 '바퀴를 바라보며(Watching the Wheels)'다. 남들이 미쳤다고 놀려도 그는 끊임없이 돌아가는 바퀴를 날마다 지켜보고만 있다는 내용의 가사다. 모든 사람이 레논처럼 아무 일도 않고서 온종일 바퀴가 돌아가는 모습만 바라보고만 있다면 나라는 망하고 문명은 몰락을 피할 수 없겠지만, 그런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 세계에서 진정 레넌처럼 바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을 지구인들은 0.00001%도 못 된다. 절대다수는 바퀴가 빙빙 돌아가는 모습을 새들이 하늘을 날고, 다람쥐가 나무를 타고 오르고, 폭포수가 쏟아지는 풍경처럼 자연스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돌아가는 바퀴를 보고서도 아무런 신비감이나 호기심을 느끼지 못하는 현대인의 화석화된 심성이 더 큰 문제는 아닐까. 온종일 가만히 바퀴만 바라보는 레논의 호기심과 탐구심을 상실한다면 문명은 발전은커녕 유지될 수도 없다. 바퀴가 왜 돌아가는지를 설명하려면 중력과 가속도에 대한 깊은 물리학적 이해가 있어야만 한다.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3~1727)이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장면을 보고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달았다는 이야기는 과장이 아니다. 흔들리는 가지, 잎새에 드는 바람을 신비롭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뉴턴이 될 수 없음이다. 지구인의 문명은 바퀴가 돌아가는 장면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사람의 순수한 호기심과 경외감을 요구한다. 인간 사회엔 바퀴를 한없이 지켜보고 있는 레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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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지구인들은 날마다 직접 차를 몰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버스·지하철 등의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원거리를 오가면서 분주히 살아간다. 롤러블레이드, 스케이트보드, 자전거, 리어카, 우마차, 자동차, 버스, 전차, 기차, 트럭, 장갑차까지 모두 바퀴를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공기를 가르며 하
늘 위로 날아오르는 방법을 빼면 모든 육로 교통엔 바퀴 달린 운송 수단이 활용된다. 바퀴를 빼고선 지구인의 현대 문명사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이따금 나는 태양계 밖에 존재하는 외계 행성의 고등 생명체들도 지구인처럼 차를 몰거나 전차를 타고 원거리 이동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몹시 궁금하다. 광막한 우주 어디에나 중력이 작용한다면 태양계 밖 외계 행성의 생명체들도 중력을 벗어날 수가 없다. 중력이 작용하는 모든 행성에선 높은 데서 둥근 물체를 굴리면 낮은 데까지 데굴데굴 굴러갈 수밖에 없다. 그런 장면을 목격한 고등 생명체라면 당연히 바퀴를 만들어 운송 수단으로 사용하는 데에까지 나아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외계인 미도가 내게 물었다.
"태초에 최초로 바퀴를 만든 그 지구인은 과연 누구였까요? 천재적인 한 명의 지구인이 바퀴를 만들어서 여러 다른 지역으로 전파했을까요? 아니면 지구의 여러 지역에서 떨어져서 살아가던 지구인들이 각기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서 독자적으로 그들 나름의 바퀴를 제작하게 되었을까요? 지구인은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서 바퀴를 운송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을까요?"
미도의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지구인의 문명사에서 바퀴의 발명은 실로 중대한 사건이다. 바퀴가 없었다면 인류는 문명을 이룰 수 없었다. 다양한 지역 사이의 원거리 교섭이야말로 문명 발생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기 때문이다. 여러 지역에서 다채롭게 만들어진 문명의 이기(利器)와 제도가 서로 부딪히고 섞이는 과정에서 문명의 기반이 탄탄하게 닦였다.
고고학의 일반론에 따르면, 바퀴는 6000 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 최초로 사용되었다. 이집트, 인도, 중국의 고대 유적지에서도 수레바퀴의 흔적이 다량 발견된다. 메소포타미아의 바퀴와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수레바퀴는 고대 문명 전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레바퀴가 전역으로 퍼져나간 결과였을까?
수레바퀴를 과연 누가 어디서 어떻게 발명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모든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명됐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여러 지역에서 시차를 두고 독자적으로 발명되었다는 독립적 진화론(independent evolution)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적어도 수레바퀴는 한 지역에서 먼저 발명되어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다는 확산 이론(diffusion theory)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4대 고대 문명권에서 출토된 수레바퀴의 모양이 대동소이하다는 점과 지역적으로 발생 시기에 약간의 차이가 보인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 도공의 돌림판에서 수레바퀴까지
6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퀴가 현실에서 유용하게 사용되는 원리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물리학적으로 그 원리는 중력과 가속도로 쉽게 설명된다. 각진 물체는 땅바닥에 놓일 때는 지표면과 마찰이 일어나 멈춰서기 마련이다. 반면 둥글 물체는 평평한 바닥에 굴리면 데굴데굴 굴러가는 성질을 갖는
다. 들짐승의 방광에 바람을 불어넣어 묶으면 공이 된다. 공은 발로 차면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으로 치솟았다가 바닥에 떨어지면 쉴 새 없이 굴러간다.
특히나 언덕 위에서 공을 굴리면 언덕 아래까지 쏜살같이 굴러가는데, 걸리는 물체가 없으면 구를수록 점점 더 빨리 구르게 된다. 야생 짐승을 사냥해서
먹고살았던 지구인의 조상들이 구르는 성질을 가진 원형의 물체에 관해서 몰랐을 리가 없지만, 바퀴를 수레에 장착해서 끌고 가게 되기까지 지구인들은
실로 많은 중간단계를 거쳤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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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를 논하다가 갑자기 토기로 주제를 바꾼 이유는 간단하다. 출토된 토기가 대개 원형이기 때문이다. 고대의 도공들도 찰흙으로 그릇을 빚을 때는 돌림판을 사용했음을 말해준다. 돌림판 위에 찰흙을 올리고 발로 아래 판을 돌리면서 손으로 그릇을 빚는 고도의 기술이었다. 돌림판을 한자어로는 윤대(輪臺)라 한다. 바퀴로 된 받침이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the potter's wheel', 곧 도공의 바퀴이다. 도공들이 날마다 발로 돌림판을 돌리면서 그릇을 빚었다면, 그 바퀴를 평평한 땅바닥에 놓고 굴리면 데굴데굴 굴러간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지만.<계속>
송재윤(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